두근두근 Tom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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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대길 (KBS N 축구해설위원)

 "성공이야기(The story of success)"의 저자 맬컴 글레드웰(Malcolm Gladwell)은 우선 ‘성공은 타고 난 개인적인 지능이나 소질보다 자라온 환경과 가족 등 주변에서 주는 영향이 만들어 준다고 했다.’ 그는 개성이나 지능과 같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특성은 직접적인 성공 요소가 아니라고 한다. 가장 큰 성공 요소는 주변의 성공적인 인물들을 보고 성공한 사람들이 조성하는 성공 문화로부터 얻는다고 주장했다.

어떤 분야든 성공을 하려면 10,000시간의 실제 경험을 거쳐야 한다고 한다. 하루 4시간을 실행한다면 10,000시간이란 약 10년을 의미한다. 이런 장기간의 노력을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심과 쉽게 포기하지 않는 지구력이다. 전 세계인을 열광의 도가니로 뜨겁게 달구었던  2010 남아공월드컵 축구가 스페인의 첫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축구팬들의 환호와 부를 함께하는 축구선수의 선천적인 약점을 후천척인 노력과 인내력으로 극복한 몇몇 선수들을 알아보자.

평범한 영웅 박 지성! 노력은 성공의 지름길이다.

박지성 선수(1981년 2월 25일생, 178㎝, 73㎏, 맨체스터 Utd)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인 성격이었고 평발과 체격이 왜소하였지만 축구를 너무 좋아하여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체격이 작아 싫은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축구는 체격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으며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명지대에 진학을 했고 남들 눈에 띄지 않아 ‘깡다구’ 하나로 버티었으며 ‘남이 보든, 안 보든 열심히 하는 것’을 미덕인 줄 알았고 보잘 것 없는 조건을 정신력으로 이겨냈ㄷ.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정신력 따위를 높게 평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부상으로 탈의실에 앉아 있는데 히딩크 감독이 통역관을 데리고 왔다. “박지성 씨는 정신력이 훌륭하던데 그런 정신력이면 반드시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말은 다른 사람이 열 번, 스무 번 축구의 천재다. 신동이다. 하는 소리보다 내 기분을 더 황홀하게 만들었다. 박지성 선수는 우리나라의 프리미어리거 1호이다. 타고난 지능보다 꿈을 갖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여 얼마나 간절하게 끈질기게 노력하느냐가 자신의 성공여부를 결정하는 관건이다. 19세 때 인터뷰 중 “쓰러질지언정 무릎은 꿇지 않는다.”고 했다고 할만큼 불굴의 정신력이 오늘의 박지성을 만들었다. 그는 책을 옆에 끼고 산다. 대표 팀 동료들이 훈련을 마치고 휴식이 주어지면 잠을 청할 때도 그는 독서를 즐기며 영어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자신의 미래와 제 2의 도약을 위해선 공부가 필수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박 지성과 닮음 꼴! 리오넬 메시의 노력과 성공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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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넬 메시(1987년 6월 24일생, 169㎝, 67㎏, 바르셀로나)는 아르헨티나의 로사리오 조그만 마을에서 공장 노동자인 아버지 호르헤 메시와 파트타임 청소부였던 어머니 셀리아의 사이에서 가난한 가정환경의 부모 아래서 성장했다.  5세부터 축구를 시작하여 축구선수가 되는 희망의 길에서 가난한 어린 메시는 11세 때 성장과정의 ‘성장 장애증’이란 질병으로 고통을 겪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치료비가 없어서 성장호르몬 결핍장애 치료를 못 받아 상처를 심하게 입었다. 박 지성이 어린 시절에 축구를 좋아해서 일기의 대부분 내용이 축구를 연습하는 것으로 채웠듯이 어린 메시도 축구에 몰입하여 세계적인 축구 선수가 되겠다는 희망 하나로 그는 어린 시절을 인내하며 보냈다. 그러던 중 축구를 잘하는 리오넬 메시는 잠재력을 일찍 발견한 스페인의 F.C 바로셀로나 구단에 운명처럼 발견되어 ‘성장 장애증’을 무료로 치료를 받기로 하고 2000년 14세에 입단했다. 2004-05 시즌 데뷔로 라 리가 최연소 리그 골도 기록했다. 메시가 데뷔한 해에 F.C 바로셀로나는 리그에서 우승했고, 다음 해인 2006년에는 리그와 UEFA 챔피언스 리그 더블을 달성했다. 2006-07 시즌부터 독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정규 주전 멤버가 되었다. 엘 클라시코에서 해드트릭을 기록했고, 리그 26경기에서 14득점을 했다. 2008-09 시즌에는 38골을 기록하며 바르셀로나의 트레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 결과 2009년 발롱도르, 2009년 유럽 올해의 선수상, 2009년 FIFA올해의 선수상, 베스트 11에 모두 선정되는 등 축구와 관련된 대부분의 상을 받으며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로서의 입지를 구축했다. 2009-10 시즌에는 더욱 향상된 경기력을 선보이며 53경기 47골 14도움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호나우드가 세운 골 기록과 동률이지만 출장시간에 비하면 그를 훨씬 능가하는 수치이다. 메시는 세계에서 연수입이 가장 많은 축구 선수로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하던 잉글랜드의 데이비드 베컴을 체치고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축구 선수로 랭크되었다. 스페인 언론은 마라도나와 비교하면서 “메시도나(Messidona)”라는 별명을 붙였다. 리오넬 메시는 ‘어린이들의 구호천사’이다. 2007년 리오넬 메시 자선 재단을 설립하여 세계의 불우한 아동들에게 교육과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자선에 대해 “유명해진다는 것은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도울 기회를 준다. 특히 어린이들에게”라고 말했다. 가난과 장애를 극복(苦盡甘來)하고 세월의 인내를 겪으면서 성장한 박 지성과 메시는 둘 다 체격이 왜소했다. 박지성 아버지는 어린 박지성이 키가 자라게 개구리요리를 먹이기도 했다. 메시의 부모들도 메시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서 별의별 노력을 다했다.

환경은 비슷하지만 메시는 유소년 팀에서 박 지성은 일본 쿄토 퍼플 상가, 아인트 호벤, 맨유에서 야생적으로 성장했다. 장애를 이겨낸 메시의 성공 이야기는 전 세계 축구 꿈나무들에게 강한 ‘긍정의 힘과 도전정신’을 심어주고 있다.

축구를 포기할 뻔 했던 다비드 비야의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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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비야(1981년 12월 3일생, 175㎝, 69㎏)는 스페인 아스투리아스 지방의 투이야 라는 작은 도시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광적으로 축구를 좋아하던 아버지 탓에 걸음마를 막 떼고 난 뒤부터 볼을 차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야의 첫 시련은 4세가 되던 해에 찾아 왔는데 사고로 오른쪽 다리 대퇴골 부위에 중상을 입어 의사로부터 앞으로 축구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진단 결과를 통보받았다. 그러나 소년 비야는 아버지와 함께 의지를 갖고 재활훈련에 전념했고 몇 년 후에는 부상이 완치되어 볼을 찰 수 있었다. 하지만 비야는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지역클럽 UP 랑그레오 시절 감독으로부터 전력 외로 구분 당 해 매 경기마다 벤치 신세였다. 결국 비야는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 못한 채 14세가 되던 해에 축구를 그만둘 것을 결심하게 되는데 이러한 비야에게 끊임없는 격려를 통해 용기를 되찾아 준 인물은 바로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격려에 힘입어 축구를 향한 열정을 되찾은 비야였지만 또 다른 시련은 17세가 되던 해에 찾아왔다. 아버지가 응원하던 아스투리아스 지역의 대표적인 클럽 오비에도 입단을 희망했지만 비야에게 전혀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고 비야는 다시 한 번 축구선수로서 자신의 가능성에 시련을 겪어야 했다. 결국 비야는 오비에도의 지역 라이벌이자 자신의 어린 시절 우상이던 키니, 루이스 엔리케 등이 몸을 담았던 스포르팅 히혼에 입단 테스트를 신청하여 합격 통보를 받았다.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한 비야는 B팀에서 왼쪽 날개와 공격수 자리를 오가며 착실하게 경험을 쌓았다. 비야가 노력의 결실을 맺은 것은 2001-02 시즌이었는데 일약 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발돋움하며 18골을 터뜨렸고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스페인 21세 이하 대표 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스페인 U-21 대표 팀은 자신보다 세 살 어린 토레스를 비롯하여 비센테, 레에스, 알론소, 델 오르노, 레이나 등이 황금세대를 구축하고 있던 경쟁력 높은 팀이었다. 2002-03 시즌에는 20골을 넣어 세군다리가(2부) 최고의 공격수로 떠올라 그해 여름에 사라고사로 둥지를 옮겼고 사라고사에서 두 시즌동안 31골을 성공시켜 자신이 프리메라리가 레벨에서도 통용되는 재능임을 증명해냈다. 2005년 여름에는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와 함께 라 리가 최강자 자리를 놓고 다투던 발렌시아로 스카웃 되어 스페인을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로 급부상했고, 데뷔 시즌에만 25골을 성공시켜 에도(26골)의 뒤를 이어 득점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에도 비야는 2006년 월드컵에서 3골을 넣은 뒤 2008 득점왕에 등극했고 국제무대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여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비야는 대표 팀과 소속팀을 가리지 않고 맹렬한 득점포를 가동하였고 불굴의 의지를 갖고 있는 늦깎이 공격수의 성공시대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축구선수들이 그라운드에 자신의 열정을 바치는 것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그 들의 꿈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우선 아마추어선수에서 프로선수, 나아가 국가대표선수, 그리고 덕망 있는 지도자로 꼽힌다. 이른바 ‘엘리트 코스’로 통한다. 하지만 이는 몇 %도 안 되는 소수의 선수들만이 누릴 수 있다. 나머지는 주변을 맴돌거나 도태된다. 다른 직업으로 전환해 성공한 경우도 있지만 실패한 사례도 많다.  협회나 연맹 등은 실패한 축구선수들의 문제점을 알고도 손을 놓고 있다. 선수들 역시 운동에만 신경 썼지 어학 등 자기계발을 위한 공부 등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초중고 리그 제 시작이 의미가 있고 중요한 까닭이다. ‘작은 실천’에서 답을 찾고 자신의 의지와 끈기가 중요하다.

“성공은 99%의 노력과 1%의 행운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운이 좋아서 굴러 들어온 성공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그리고 존경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전 세계인의 열광적인 환호와 축하를 받고 있는 ‘박 지성, 리오넬 메시, 다비드 비야 선수’들처럼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는 언제나 승리한다. 그리고 존경 받는 훌륭한 선수가 된다. 이번 원정 첫 16강 목표에 성공한 국가대표 스타 허 정무 감독은 축구 선배로서 조언을 했는데 “브라질의 펠레는 체육부 장관을 했고 프랑스의 미셸 플라티니도 차기 유럽축구연맹 회장 후보다”라며 공부와 축구를 병행했던 이들이 성공한 사례를 자라나는 후배들에게 얘기했다. 해외 진출을 원하는 축구선수들에게는 영어 등 어학 공부에 충실 하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그는 선수시절 경험을 이야기하며 “계란 프라이를 주문하려고 하는데 말이 안돼서 닭 흉내를 냈다.”라고 지난 기억을 말했다. 앞으로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려면 이제는 공부를 하면서 운동을 병행해야 하는 시대이다. 그리고 포기하면 승리할 수 없다. 따라서 스포츠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만이 성공할 수 있다.’라는 진리를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되새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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