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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

스페인이 마침내 축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실로 고진감래 끝에 획득한 영광이며 충분히 자격이 있는 우승이다. 스페인의 역사적인 정상 등극의 일곱 가지 의미와 교훈들을 짚어봤다.

1. ‘스페인의 시대’를 쓰다
스페인은 그들의 첫 번째 우승으로써 서독(1972, 1974)에 이어 유럽선수권 우승자가 연이어 세계 정상까지 오른 두 번째 사례로 기록됐다. 세계 정상에 먼저 등극하고서 대륙별 선수권을 곧바로 제패한 다른 사례도 프랑스(1998, 2000)와 브라질(2002, 2004)에 지나지 않음을 감안하면, 스페인이 이룩한 업적의 난이도를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륙과 세계에서 연거푸 정상에 올랐다는 사실은 근년의 시기를 ‘스페인의 시대’로 정의내릴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한 마디로 스페인은 첫 번째 우승의 감격과 더불어 축구사에 굵디굵은 족적을 남겼다 하겠다.

2. ‘징크스 파괴자’ 스페인
스페인은 비유럽 개최지에서 정상에 오른 첫 번째 유럽 국가이자, 본선 첫 경기를 패하고서도 우승에까지 이른 첫 번째 국가로 기록되기도 했다. 이는 개최지가 어디인가와는 상관없이 실력, 조직력, 체력 등 모든 측면에서 잘 준비된 팀이 우승에 이를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또한 첫 경기 패배에 굴하지 않고 분연히 되살아난 스페인의 사례는 앞으로의 대회들에서 다른 팀들에게도 좋은 교훈이 될 법하다. 실력 있는 준비된 자에겐 징크스도 통하지 않을 수 있다.

3. ‘토털 풋볼의 적자’임을 증명하다
지난 칼럼에서 자세히 서술했듯이, 스페인은 리누스 미켈스와 요한 크라이프에 의해 혁명적으로 구현됐던 축구 이론 ‘토털 풋볼’을 현대에 이르러 가장 완성도 높은 형태로 계승한 팀(클럽 축구의 바르셀로나를 제외하고 적어도 국가대표 축구로만 국한할 때)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미켈스와 크라이프를 낳은 네덜란드는 근자에 이르러 전통적 토털 풋볼이라기보다 승리를 우선시하는 실용주의 노선의 축구를 채택했는데, 결국 스페인은 자신들의 장점을 잘 살려 그러한 네덜란드를 극복했다. 네덜란드 사람들에게는 뼈아픈 일이었겠으나 이는 ‘토털 풋볼의 적자’가 ‘토털 풋볼의 나라’를 꺾어버린 셈이 되었다.

4. ‘토털 풋볼의 우수성’을 증명하다
높은 지역에서부터 펼쳐지는 압박, 수비라인의 공격적인 전진, 기술과 움직임에 바탕한 높은 점유율, 그리고 공격 축구. 이것이야말로 미켈스와 크라이프가 바르셀로나 클럽을 통해 스페인에 심어 놓은 토털 풋볼의 요체들이다. 물론 이러한 경기 운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며 기술적, 조직적, 체력적 측면들이 높은 수준으로 갖춰져야 가능하다. 하지만 일단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되면 그 축구는 필경 아름답고도 강력해진다. 스페인 선수들의 조직적이고도 성실한 압박은 상대의 볼 소유권을 금세 찾아오며, 그들의 기본기, 패스와 움직임은 일단 한 번 찾아온 볼을 좀처럼 내주지 않는다. 이러한 스페인을 불철주야 압박하며 90분 내내 괴롭히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닌데, 사람이 아무리 빠른들 스페인 선수들이 볼을 이동시키는 속도보다 더 빠를 수는 없는 까닭이다. 스페인의 컨디션이 정상에 가깝다는 전제라면, 상대 팀은 결국에는 ‘적어도 한 골’은 허용하게 된다는 사실이 이번 대회에서도 잘 증명됐다. 그리고 스페인의 높은 점유율이라면 어쩌면 그 한 골로도 상대에겐 역전의 기회가 그리 크지 않다.

5. 스페인은 ‘위대한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국가대표와 클럽을 동시에 고려할 때 다비드 비야만큼 꾸준히 많은 골을 터뜨려온 공격수는 전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비야는 현대 축구의 공격수에 요구되는 거의 모든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인물이다. 샤비 에르난데스는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의 ‘토털 풋볼’이 제대로 돌아가게끔 해주는 사령관이다. 패스와 볼 키핑에 있어 지구촌 최고의 거장이라 해도 좋을 샤비는 틀림없이 현대 축구의 가장 첨단적인 무기들 가운데 하나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는 몇 해 전부터 바르셀로나 팬들로부터 ‘리오넬 메시 다음가는 선수’라는 칭호를 받아온 사나이다. 카를레스 푸욜과 이케르 카시야스는 최전성기로부터 내려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큰 승부에 강한 거목의 면모를 펼쳐 보인다. 여기에 페르난도 토레스, 세스크 파브레가스, 다비드 실바 등의 존재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스페인은 이번 대회에서 역대최고의 멤버로써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던 셈이고 결국 그 기회를 현실로 만들었다.

6. 스페인은 ‘자원의 보고’다.
스페인-독일 전에 관한 칼럼에서도 언급했던 포인트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토레스와 파브레가스를 동시에 ‘후보 선수’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팀은 적어도 현재로선 스페인이 유일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지금의 스페인에는 헤수스 나바스, 헤라르드 피케, 페드로 로드리게스, 세르히오 부스케츠 등을 필두로, 그 밖에도 많은 신선한 자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두터운 스페인의 선수층은 이번 대회에서도 충분히 말을 했다.

7. 델 보스케는 ‘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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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비센테 델 보스케는 다른 번쩍번쩍하고 시끌벅적한 유명 지도자들에 비하면 거의 ‘튀지 않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나타난 델 보스케 감독의 선수 선발과 기용, 대회 중, 경기 중 전술 변화에는 사실상 거의 흠결을 발견할 수 없을 정도였다. 또한 그는 루이스 아라고네스가 이미 커다란 성공을 이끌었던 팀을 적절히 계승, 발전시켜야 하는 부담스러운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조용하고 부드럽게 할 일을 다 해내는 사나이, 그가 바로 비센테 델 보스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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