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Tom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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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패권을 다투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결승전은 축구사의 ‘클래식’으로 기록될 듯싶다. 세계 축구가 이만큼 성장하는 데에 있어 작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두 나라지만, 둘의 공통점은 세계에서 가장 값진 트로피를 여태껏 들어 올리지 못했다는 사실. 축구사의 ‘자격 있는’ 두 팀이 마침내 만나게 된 이번 결승전의 전술적 의미를 짚어 봤다.

‘토털 풋볼’의 진정한 계승자 스페인

축구사를 통틀어 ‘토털 풋볼’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이론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동료가 빠져나간 공간을 다른 동료가 메워주는 유기적인 움직임은 요즈음의 축구에선 매우 상식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지만, 반세기 전에 행해진 대부분의 축구는 그러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시절의 움직임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포지션’이었다. 하지만 전설적 명장 리누스 미켈스와 ‘그라운드 안의 완전무결한 사령관’ 요한 크라이프에 의해 구현된 ‘토털 풋볼’이야말로, 포지션에 천착해왔던 고정관념을 타파하면서 움직임의 기준을 ‘포지션’이 아닌 ‘공간’으로 바꾸어놓는 축구사의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

‘전원 공격, 전원 수비’라는 단순화된 문구에 의해 다소간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토털 풋볼’은 ‘팀 전체가 공간을 기준으로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것’으로 표현되는 것이 더 낫다. 이는 미켈스 감독이 추구했던 ‘압박 축구’의 자연스런 귀결이라 할 수 있는데, 그는 포지션에 얽매이지 않는 전방에서부터의 적극적인 압박을 통해 가급적 상대 골문과 가까운 위치에서 볼을 빼앗아 공격을 재개하는 형태의 효율적인 공격 축구를 원했다. 그런데 공격수들이 상대를 압박해 볼을 탈취했을 때 효과적인 역공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공격수가 압박에 참여하면서 비워놓은 공간을 메워주는 수비수나 미드필더의 공격 가담이 필요하게 된다. 이 대목에서 ‘전원 공격, 전원 수비’란 문구가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이것을 실행함에 있어 미켈스 감독이 강조했던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볼의 점유’다. 아군이 볼을 소유하고 있는 시간을 가급적 늘려야만 전원 수비(압박)로 인한 체력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까닭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선수들의 유기적인 움직임과 패스 능력, 뛰어난 기본기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 크라이프를 위시한 당대 네덜란드의 선수들은 미켈스의 이러한 요구 사항을 잘 수행할 수 있을 만큼 평균적인 능력이 우수했다.

요즈음의 축구에서 미켈스와 크라이프로 표상되는 이 ‘토털 풋볼’의 정신을 가장 완벽하게 이어가고 있는 팀 하나만을 꼽는다면 누가 뭐래도 FC바르셀로나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매우 자연스러운 귀결이라 할 수 있는데, 불가분의 사제지간인 미켈스와 크라이프(그리고 ‘작은 요한’ 네스켄스까지도)가 아약스로부터 바르셀로나로 옮겨온 이래 바르셀로나는 대부분의 세월을 네덜란드 출신 감독들의 휘하에서 보냈다. 미켈스, 크라이프, 루이 반 할, 프랑크 레이카르트가 바로 그들이며 특히 크라이프와 레이카르트는 각자의 ‘드림팀’을 성공리에 구축, UEFA 챔피언스리그를 정복했다. 세 번째 드림팀을 이끌고 6관왕의 업적에까지 도달한 ‘크라이프의 제자’ 펩 과르디올라 역시 비길 데 없이 뛰어난 ‘점유’와 ‘압박’의 진수를 자신의 팀을 통해 선보이고 있다.

리오넬 메시가 없는 것이 단 하나의 아쉬움이기는 하겠으나 지금의 스페인 대표 팀은 이러한 바르셀로나의 ‘쌍둥이 버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선 칼럼에서도 서술한 바 있듯이 스페인은 독일과의 대결에서 다비드 비야를 포함한 바르셀로나 선수 7명을 선발라인업에 포함시켰다. 선수 구성의 유사성을 차치하고라도, 어떠한 경기에서든 상대보다 월등한 볼 점유 능력을 발휘하며 조직적인 압박에도 능한 두 팀의 모습은 스페인과 바르셀로나를 동일한 유형으로 간주하지 않을 수 없게끔 한다. 네덜란드 축구의 우상 크라이프가 “스페인이 더 우승후보”라는 식으로 인터뷰를 한 것도 자신의 축구관을 가장 정확하게 이어받은 팀에 대한 애정과 존중에 기인할 공산이 크다.

크라이프보다는 무리뉴를 닮은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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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압박-점유-압박-점유가 반복되는 ‘미켈스-크라이프 식 토털 풋볼’의 진정한 계승자라 할 만하다. 반면 미켈스와 크라이프의 고향인 네덜란드는? 물론 지금의 네덜란드에도 토털 풋볼의 유산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예를 들어 딕 카이트의 움직임을 보라). 그러나 지금의 네덜란드 축구는 ‘토털 풋볼 그 자체’라기보다는 수비적 안정성과 공격적 재능을 적절히 버무린 ‘실용주의 축구’로 정의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요즈음에 이르러 이 실용주의 축구를 가장 상징적으로 대변하던 두 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얼마 전까지 조세 무리뉴(현 레알 마드리드)의 지도를 받아왔던 유럽 챔피언 클럽 인터 밀란이며, 또 다른 팀은 둥가 휘하에서 승승장구했던 브라질이었다. 무리뉴의 인터 밀란은 바르셀로나와 자웅을 겨룬 지난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볼 점유를 압도적으로 내준 상황에서도 바르셀로나를 극복하는 데에 성공, 종국에는 역사적인 3관왕에 올랐다. 둥가의 브라질 또한 적어도 네덜란드와의 8강전에서 패하기 이전까지 빼어난 승률을 기록하면서 ‘지루한 브라질’이라는 비판을 성적으로 잠재우고 있었다. 브라질은 코파 아메리카와 컨페더레이션스컵의 챔피언이기도 하다.

이들의 스타일은 대체로 이러하다. 상대가 볼을 지녔을 때 대부분의 선수들은 신속하게 낮은 지역으로 내려와 수비 블록을 굳건히 한다. 자신의 위험 지역에 들어온 상대편에 대해서는 빠르게 공간을 좁히는 조직적인 협력 수비를 펼친다. 볼 소유권을 지니는 경우에도 무리하게 한꺼번에 전진하기보다 일단 수비형 미드필드 지역에서 볼을 소유하며 상대의 틈을 노린다. 상대 위험 지역에 대한 본격적인 공략은 스피드와 기술을 갖춘 서너 명 선수들의 몫이다.

지금의 네덜란드야말로 인터 밀란-브라질 유형의 ‘실용주의’가 녹아들어 있는 세 번째 대표주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정적 수비 구축을 우선시하면서 공격은 서너 명의 재능 및 스피디한 연계 플레이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다. 예를 들어 인터 밀란이 밀리토-에토-스네이더-마이콘에 공격을 의지한다면 브라질에는 파비아누-호비뉴-카카-마이콘이 있고 네덜란드는 반 페르시-로벤-스네이더-카이트에 기대를 건다.

사실상 네덜란드와 브라질이 펼쳤던 8강전은 ‘전술적 사촌지간’의 대결(따라서 어느 정도의 지루함은 예정된 결과였다)이었고 이 경기에서 네덜란드는 자신들과 비슷한 껄끄러운 상대를 물리치며 고비를 넘은 셈이다. 결국 네덜란드는 장구한 월드컵의 역사에서 ‘펠레와 친구들’의 1970년 브라질 팀만이 달성했던 ‘예선, 본선 전승 우승’에까지도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번 결승전은 자신들의 전통과 다소간 상이한 실용주의를 채택한 네덜란드와 네덜란드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가장 현대적인 형태로 계승하고 있는 스페인의 대결이다. 첫 우승 팀 출현이라는 기념비적 의미에 더해, 이 한 판은 오늘날 축구의 전술적 모습을 통찰함에 있어서도 매우 유의미한 경기가 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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