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박찬하 (KBS N 축구해설위원)
이번 남아공 월드컵은 득점이 저조한 대회입니다. 조별 예선 48경기에서 모두 101골이 터져 월드컵에 32개국이 출전한 이래로 가장 저조한 득점을 올렸습니다. 다행히 토너먼트에서 조별 예선보다 많은 골이 터지면서 평균 득점을 올리고 있지만, 이번 대회가 골이 적게 터졌다는 사실을 바꾸기엔 역부족입니다.
이렇게 득점이 저조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처음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대회가 열리는 만큼 생소한 환경의 탓이 있을 것이며, 탱탱 볼에 가까운 재앙의 축구공 자불라니의 영향도 있었겠죠. 하지만 무엇보다 대부분 팀이 성적을 위한 실리 축구를 구사한 이유가 가장 크다는 생각입니다.
대부분 수비를 내리고 안정 지향적인 축구를 하면서 실점을 줄이는 데 목적이 있었기에 공격하는 쪽은 늘 애를 먹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이번 대회뿐 아니라 최근 굵직한 대회에서 공통으로 나타난 현상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월드컵이나 유로 같은 환상적인 대회가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브라질과 네덜란드까지 공격보다는 안정적인 실리 축구를 구사하고 있으니 지금은 실리 축구가 대세이기는 대세인가 봅니다.
그럼에도 실리라는 명분을 무시하고 공격에 충실한 나라들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국가들을 응원했던 월드컵이었습니다.) 안정과 모험을 모두 가져갈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두 가지를 동시에 가져가기란 불가능합니다. 물론 독일 같이 공수에서 균형 잡힌 전력으로 우리 눈을 즐겁게 만든 나라도 있었죠. 독일 축구는 지난 대회에 이어 이번 대회까지 흥미로운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과거 그들이 자랑하던 전차는 최신예 전차로 고급화되어 빠르고 세밀하며 간결한 모습을 선사했습니다. 누구 하나 욕심부리지 않고 팀을 생각하는 조직력도 상당히 돋보였죠. 아쉽게 두 대회 연속 결승 진출에 실패하면서 다시 구형 전차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긴 해도 독일 축구는 이번 대회를 즐겁게 만들어줬습니다.
안정을 꾀하진 못했지만 모험적으로 공격에 충실하며 축구의 화끈한 매력을 보여준 고마운 국가도 있습니다. 바로 아르헨티나, 칠레, 멕시코, 미국이 주인공입니다. 아르헨티나는 명성답게 공격진의 화려함이 드러났습니다. 6명의 공격수가 모두 투입되는 흥미진진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마라도나 감독은 자신의 성향답게 팀을 공격적으로 이끌었죠. 전략이나 전술보다는 개개인의 기량에 의존하는 공격이긴 했으나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아무 작전 없이도 제 몫을 해내는 선수들 아니겠습니까. 개인이 잘 갖춰진 조직 앞에서는 무기력하다는 것을 보여주긴 했지만요.
칠레는 비엘사 감독의 명성답게 전진과 전진을 거듭했습니다. 천하의 브라질을 상대하면서도 맞춤형 전술을 구사하지 않고 그들만의 저돌적인 모습을 선보였죠. 결과는 참혹했습니다만 칠레 축구는 즐거움 그 자체였습니다. 수비부터 공격까지 모든 선수가 엄청난 활동량을 동반하며 그라운드 곳곳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스리백과 포백을 넘나드는 수비진의 유기적인 움직임, 공격진들의 골을 향한 집념 등 잘 만들어진 팀이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공격을 결정지을 확실한 공격수가 아쉬웠습니다. 바꿔 생각해보면 확실한 공격수가 없어서 모든 선수가 득점을 위한 움직임을 가졌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멕시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멕시코도 칠레처럼 많이 뛰면서 공격적인 성향을 선보였습니다. 측면 수비수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위협적인 중거리 슛을 때리면서 말이죠. 측면으로 크게 벌려주고 다시 중앙으로 돌아와 기회를 잡거나 개인이 드리블하면서 수비 조직을 무너뜨리는 시도가 많았습니다. 이런 축구는 보고 있으면 참 시원하니 재미있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공격으로 맞서 싸우던 멕시코의 모습. 판정이 아쉬운 16강이었습니다.
미국은 조별 예선 3경기 중 2경기를 극적으로 만든 주인공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조별 예선 3경기 중 2경기를 재미있게 치른 국가는 많지 않았습니다. 재미라는 것이 상대적이긴 하지만 미국이 슬로베니아와 알제리전에 보여준 내용과 결과라면 충분합니다. 애초 미국의 전력은 수비를 바탕으로 측면에 역습을 만드는 실리축구였습니다. 그러나 잉글랜드와의 경기가 끝나자마자 수비적인 모습을 벗어던지고 공격에 충실하더라고요. 공격수 알티도어와 핀들리를 믿기 어려웠나 봅니다. 전체적인 전진으로 수비가 꽤 고생하긴 했지만 그들이 보여준 극적인 장면은 잊을 수 없었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