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에서 페어와 남자 싱글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피겨라고 할 때 관객에게 가장 쉽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점프입니다만 점프가 없는 종목이 있습니다. 그것이 아이스 댄스입니다. 이 부분과 올림픽 피겨의 하이라이트인 여자 싱글의 명작을 꼽아 보겠습니다.
1. 아이스댄스 : 경기 규칙마저 바꾸게 한 1984 올림픽 토빌/딘의 볼레로
여러 달 전 제가 어느 게시판에 이 영상과 설명을 올렸을 때 이런 댓글이 있었습니다.
- 아이스 댄스 영상 처음 보는데 점프가 없이도 피겨가 아름답다는 걸 처음 느꼈다.
1984 올림픽의 토빌/딘 (www. figureskating.about.com)
아이스 댄싱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에서 성행했던 은반 위의 볼룸 댄스입니다. 따라서 예술성이 극대화되어 있고 점프나 리프트는 없거나 매우 제한되어 있지만 두 댄서 간의 호흡과 춤의 해석이 주가 되는 종목으로 세계 선수권과 올림픽에는 가장 늦게 채택됩니다(올림픽은 1976년 부터). 여기에서의 라이벌은 영국과 러시아였고 프랑스,이태리,캐나다가 강국입니다.
1984 올림픽은 구 유고연방의 사라예보에서 열렸는데 이 작품은 그 올림픽 피겨의 상징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영상을 보시죠.
영상의 7분께 이들에 대한 채점 결과가 나오는데요 기술성에서 3개의 6.0 만점, 예술성에서 9명의 심판 전원이 6.0 만점을 준 전무후무한 작품입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라벨의 볼레로에 맞춰 표현하는 이들의 댄스는 이 유투브 영상에 달린 댓글 '25년이 지나도 지금 봐도 숨막힌다'라는 것이 있을 만큼 완벽한 예술입니다.
제인 토빌, 1957년 생, 크리스토퍼 딘 1958년 생, 둘 다 영국 노팅험 출신, 1975년 팀 결성, 23년간의 호흡과 수많은 명작, 각자의 결혼과 재혼, 입양, 그리고 다시 얼음판으로의 복귀, 이들의 이야기는 책 한 권으로도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깁니다.
원래 제인 토빌은 페어 종목 선수였습니다. 둘이 아이스 댄스 조를 결성한 1975년, 제인 토빌은 페어 종목의 영국 주니어 챔피언, 크리스토퍼 딘은 아이스 댄스 주니어 챔피언 타이틀을 이미 가지고 있었습니다. 둘이 하는 거라 비슷해 보여도 페어 스케이팅 종목과 아이스 댄스는 규정도 요소 기술도 많이 다릅니다. 1년 정도의 적응기간 후 이들은 대회에 나사기 시작하는데 이 때 코치도 바꿉니다. 그 후, 1978/79 시즌 영국 챔피언이 되고(이후 은퇴시까지 7연패합니다) 1980 올림픽에 출전하는데 그 때는 5위에 그칩니다. 그 당시는 러시아 댄스가 7년간 세계 선수권을 우승하고 있던 시기입니다.
1981년 가수이자 연기자인 마이클 크로포드가 이들에게 연기를 지도합니다. 그는 은퇴시까지 이 팀의 멘토가 되어 여러 가지 조언을 하고 바로 저 볼레로 연기를 코치들과 함께 지켜보는 이들 조의 연기 스승입니다. 마이클 크로포드는 영국 왕실로부터 4번째 훈장인 OBE(Order of the British Empire)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의 지도 덕분인지 1981년 세계 선수권을 우승한 이래 1984년 1차 은퇴 때 까지 4년 연속 우승을 포함 참가한 10개의 국제 대회에서 모두 우승합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피겨 스케이팅에는 돈이 많이 듭니다. 1984 올림픽 이전 제인 토빌은 보험회사 사무직 직원이었고 딘은 경찰관이었습니다. 아마추어 규정이 엄격했던 당시니까 쇼를 통해 훈련비를 충당한다던가 하는 것은 꿈꿀 수 없던 시절입니다.
이 볼레로 프로그램은 원곡이 17분이나 되어 프리 댄스 시간 제한인 4분 10초 이내로 편곡을 해야 했는데 아무리 압축해도 4분28초가 필요했답니다. 그런데 올림픽 규정집에 시간 카운트가 스케이터의 날이 빙판에 닿은 상태가 아니면 시작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 토빌의 날이 처음 18초 동안 빙판 위에 있지 않게 했다고 합니다. 날을 공중에 띄운 채로 서로 상체만 움직입니다. 이후 국제연맹은 이 규정의 맹점을 수정, 시간 카운트를 신체의 어느 일부라도 움직이면 시작하는 것으로 바꿉니다. 또 이 볼레로 영상의 마지막 장면에서 둘이 사랑 끝의 죽음을 나타내며 빙판 위로 쓰러지는 장면이 압권인데 이후 1988 올림픽의 카타리나 비트의 카르멘에서도 유사한 장면이 나오자 많은 선수들이 그 빙판위에 쓰러지는 것으로 연기의 끝을 장식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이에 국제연맹은 그 빙판 위에 쓰러지는 죽음의 엔딩 장면을 규제하기에 이릅니다.
이들은 프로 선수의 대회 참가가 허용된 1994년에 올림픽 복귀를 시도하는데 당시 참가자 중 최연장자(제인 토빌 만 36세)였지요. 그러나 그 10년 사이 아이스 댄스의 기술 규정이 바뀐 부분이 있어 치열한 접전 끝에 아슬아슬하게 3위에 머무릅니다. 이 1994년 올림픽 아이스 댄스는 사상 최고로 금메달 후보간의 기량이 근접해 업치락 뒤치락 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2. 스토리 텔링과 관객과의 소통에 대한 교본: 1988 올림픽 여자 싱글 카타리나 비트의 카르멘
세계 피겨 역사를 어느 나라 누가 쓴다 해도 동독의 카타리나 비트와 그녀의 불후의 명작 카르멘을 빼고 설명할 강심장은 없습니다. 2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본다면 물론 기술적으로 이보다 나은 작품도, 예술적으로 이보다 낫다 싶은 작품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 피겨 역사에 끼친 공헌도와 영향력에 있어 이를 능가할 작품은 없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1988 올림픽의 비트(공식 홈페이지에서)
1988 캐나다 캘거리 올림픽에서 가장 큰 화제는 남자 싱글의 브라이언 보이타노(미국)와 브라이언 오서(캐나다)가 벌이는 브라이언 전쟁과 카타리나 비트와 미국의 데비 토마스가 벌인 카르멘 전쟁입니다. 브라이언 전쟁은 두 라이벌의 이름이 같은 것에서 유래했지만 이 카르멘 전쟁은 두 선수가 사용할 곡이 정확히 똑같은 비제 원작의 카르멘이었다는 점입니다.
이미 1984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고 월드 챔피언 4회, 유럽 선수권 6연패를 이뤄 낸 카타리나 비트는 1984~1988 기간 중 참가한 대회에서 꼭 한 번 2위를 합니다. 그 1986 세계 선수권의 우승자가 현재까지도 유일무이한 흑인 챔피언 데비 토마스입니다. 카타리나 비트가 올림픽을 2연패할 경우, 이는 1930년 대의 전설 소냐 헤니(노르웨이)의 3연패 이후 처음이고 두 선수 모두 사전에 이 시즌이 마지막이라고 공언한 터여서 제 기억으로 당시 미국 언론은 거의 매일 이들의 뉴스를 내보냈습니다. 쇼트 프로그램까지 끝났을 때의 성적은 데비 토마스가 1위 카타리나 비트가 2위였지만 점수 차가 거의 없어 이 프리 경기에서 이기는 사람이 금메달인 상황이어서 모든 것이 극적이었습니다.
22세의 카타리나 비트는 동독 출신인데 당시는 소련과 동구권을 철의 장막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철의 장막에서 가장 자본주의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스케이터라는 평을 들어왔던 카타리나 비트는 비제 작곡 카르멘의 주인공 무희 살로메를 연기하는데 시작부터 그녀의 카리스마에 모든 관객이 압도당합니다
흥겨은 스텝이 이어지자 관객들은 저도 모르게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후반 30초간 음악이 비감어린 톤으로 바뀌며 살로메의 비극적 최후가 그려집니다. 카타리나 비트가 교회의 종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얼음판 위로 쓰러졌을 때 모든 관중이 기립 박수를 보냅니다.
이 작품은 기술적으로는 최고 난이도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술성 만큼은 최고여서 이 불세출의 영웅이 올림픽 2연패라는 업적을 이루게끔 합니다. 더불어 관중을 사로잡는 것이 얼마나 이 스포츠에 필요한 것인가를 느끼게 해 줍니다. 이후의 여자 싱글 프로그램에는 대부분 이 스토리 텔링의 강조와 관객 호응을 유도하는 요소가 들어가게 됩니다. 카타리나 비트는 왜 사람들이 피겨 팬이 되는가를 이 작품 하나로 보여 준 것입니다.
1988 올림픽 우승 후 열린 월드를 마지막으로 비트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첫 사회주의 국가 출신 프로 선수가 되는데 계약금이 당시 돈으로 380만 달러 정도, 지금이라면 2000만 달러에 가까운 돈입니다. 하지만 그 수입의 85%는 동독 정부 몫이었답니다. 그 1988 월드 후 인터뷰에서 비트는 무려 17년 간이나 훈련, 훈련, 훈련만 해 왔다며 울먹입니다. 그러나 또 동독의 국기를 달고 동독 국가를 시상대 위에서 듣는 마지막 기회라서 시상대에서 눈물을 보였다고도 합니다. 비트는 그런 성숙한 여인이었습니다.
1989년 동독이 무너지며 비트는 이제 자유롭게 활동하게 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 1988 올림픽의 프리 프로그램 카르멘의 연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Carmen on Ice" 지요 여기에는 1988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브라이언 보이타노가 돈 호세 역을, 은메달리스트 브라이언 오서가 에스카밀로 역을 맡았고 1991년 이들은 모두 에미 상을 받습니다. 브라이언 보이타노와의 공동 아이스 쇼는 1989~1991 3년간 미국 전역을 순회했었답니다.
전 세계가 이 카타리나 비트의 공연을 원했고 또 그 카르멘을 원했습니다. 수많은 아이스 쇼를 매진시키고 TV, 영화에 출연하며 인기 스타로서 약혼과 파혼도 경험하는 이 세계의 스타는 아직 미혼입니다. 그리고 2008년 2~3월에 마지막 투어를 갖고 프로 생활도 접습니다. 38년간이나 얼음 위에 선 디바 카타리나 비트의 퇴장은 많은 저같은 올드 팬들을 아쉽게 했지만 이제 김연아 선수가 그 뒤를 잇겠지요.
카타리나 비트는 재단을 세워 사회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카타리나 비트 재단은 2005년에 세워졌는데 특히 장애 아동들의 구호와 의료 지원, 그리고 장애인 스포츠 후원이 주 사업으로 재단 부회장은 오토 복 그룹(의료 기업) 설립자의 손자이자 CEO인 네이더 박사이고 독일 정부의 장애 복지 담당 국회의원이었던 칼 허만 하악 씨, 장애인 올림픽 테니스 금메달리스트 출신의 라이너 슈미트 씨, IOC '여성과 스포츠' 분과 위원을 역임했던 저명한 스포츠 교육학자 델-테퍼 박사 등이 이사로 있습니다. 한 마디로 대단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카타리나 비트 재단(http://www.katarina-witt-stiftung.de/en/home.html)
이 재단이 그간 구호 활동을 벌인 곳은 중국, 인디아, 말레이지아, 아프리카 여러 곳, 우크라이나 등입니다.
카타리나 비트는 지금 2018 뮌헨 올림픽 유치 홍보대사를 맡고 있습니다. 평창 올림픽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연아 선수와 구 전설과 신 전설의 홍보 대결을 펼쳐야 하겠네요.
세계 피겨 스타는 단순한 스포츠 선수가 아닙니다. 개인의 인기 뿐 아니라 이런 봉사와 나눔의 모습도 갖춘 Nobless-Oblige 가 많아서 더욱 오래 사랑받는답니다. 김연아 선수가 앞으로 모델로 하여 살아갈 만한 모습이라 하겠지요. 워낙 그 "Sexy" 코드로 선입견이 많이 가 있지만 이미 40대 중반인 그녀는 남편이 없어도 이렇게 전 지구의 팬들과 일반인들의 존경과 사랑 속에 살아가는 훌륭한 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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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 선수 경기 보면서 피겨에 관심 갖게 됐는데,
2010/02/12 10:22해외 선수들 기량도 장난 아니네요! 저 영상 멋져요!
피겨에 폭 빠지겠는데요 이제? ㅎㅎ
어린 시절 카타리나 비트는 전설이었는데요~
2010/02/12 10:48미모도 실력도 최고였던 그녀!!!
연아양도 이번 올맆픽을 통해 전설로 남길 바래요~
아이스댄싱이나 페어 선수들은 신체접촉이 많은 만큼
2010/02/12 11:46결혼이 많은 거 같아요...
어려서 시작하고 계속 함께 하는 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이들의 연기에 담겨있겠죠... ^^
카타리나 비트의 연기만큼
이번 연아선수의 경기도 전설로 남길 바래요...
카타리나 비트... ^^*
2010/02/12 12:14저도 생각나네요~
김연아선수도 이렇게만하면 레젼드가 되어가겠죠? ^^*
앞에 피겨의 명작 1부 보고 바로 달려와서 봤는데
2010/02/12 14:07정말 멋지네요. 저도 아이스댄싱은 좀 별로 라고
생각했었는데 저분들의 볼레로를 보니 감탄이 절로 나오네요
카트리나 비트 재단 사이트도 알게되었네요.. ㅎ
2010/02/14 01:45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카타리나 비트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피겨의 여제죠... ^^
2010/02/15 17:04그녀의 환한 미소는 아직도 선하네요...
역시 카르멘 하면 카타리나 비트였는데
요즘엔 연아선수의 카르멘이 더 회자되다니
정말 자랑스러워요... ^^